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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비즈니스 여행기.......(6)집안, 광개토왕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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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5일 8시 30분 집안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단동을 좀 더 보고는 싶었지만 하루를 더 머무르기에는 좀 길다는 생각이었다. 단동의 날씨가 생각보다 차갑고 또 빨리 연길에 가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단원들을 생각하면 너무 늦출 수가 없었다.

지도를 샀으니 인터넷의 여행기들을 조합해보면 내가 원하는 정보는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내가 단동을 보고 싶었던 것은 단동의 부동산 가격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단동에서 부동산을 산다면 분명히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인데 그렇다면 나는 단동에 하나 정도 사 놓을 의사가 있었다.

중국에서 가장 큰 돈을 벌 수 있는 분야는 분명 부동산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가격 추이도 그렇고 발전 속도로 봐서도 분명 부동산은 계속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집안행 버스를 타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단동역앞에 있는 버스들 가운데 집안이라고 적혀 있는 버스를 타면 되기 때문이다.

집안은 그럼 어떤 곳인가? 말로만 듣던 광개토대왕비와 장군총, 국내성터 등이 있는 곳이다. 집안은 오래된 무덤이 12000여개나 있단다. 워낙에 역사가 오래된 도시이다 보니 과거 번성했을 때의 무덤과 유적들이 도시 곳곳에 있다.

단동에서 집안으로 직접 가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한국에서 집안으로 가는 사람들의 경우는 대부분 심양이나 장춘에서 출발해서 통화를 거쳐서 집안으로 간다.

그러나 나는 단동에서 바로 집안을 거쳐서 통화로 가는 코스를 택했는데 거리상으로는 이것이 최적의 거리이다. 이상하게도 단동에서 바로 집안으로 가는 여행코스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지 않는다. 내 생각으로는 굳이 통화를 거쳐서 가는 코스보다는 바로 집안으로 가는 것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맞는다는 생각이다. 한국사람에게 있어서 통화를 갈 이유는 없지만 장군총과 광개토대왕비가 있는 집안은 꼭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집안으로 가는 버스를 타자 의외로 집안행 고속도로의 길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난 길이 험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길은 잘 뚫려 있고 의외로 빠르게 간다.

더군다나 압록강을 따라서 가는 길이므로 압록강 너머의 북한을 보면서 갈 수 있어서 보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었다.

버스는 3시간 넘게 달리자 차츰 산길로 다니기 시작한다.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며 우리나라의 대관령 같은 고개를 넘자 드디어 집안 시내로 가는 길이 나온다.

집안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 정도.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습관적으로 사우나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여기서 유적지들을 다 보고 자고 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어본 택시운전사의 답변은 의외이다.

굳이 여기서 잘 이유가 없다고 충고한다. 장군총이나 광개토대왕비는 모두 한 곳에 몰려 있으므로 택시를 대절하면 금새 다 볼 수 있단다. 그럼 굳이 다른 일을 할 게 없으므로 그냥 통화로 가서 거기서 이도백하 가는 저녁 9시 반 기차를 타고 연길로 가는게 낫다고 한다.

그 말이 일리가 있게 여겨져서 나는 아저씨 택시를 대절해서 관광지들을 잠깐 둘러보고 그냥 통화행 버스를 타기로 했다. 아저씨의 적절한 충고가 고마워서 이용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50위안 달라는 것을 30위안으로 깍았다.

원래 이런 식으로 관광지를 택시로 잠깐 둘러보고 나오는 것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들 중에 하나인데 연길로 가는 시간표가 너무 적절하므로 그 일정을 흐트러뜨리고 싶지 않았다.

택시를 타자 10분만에 광개토대왕비에 도착했다. 버스에 캐리어를 놓고 나 혼자 보러가는 것이 조금 걱정되기는 했지만 운전수 아저씨를 믿고 광개토대왕비로 갔다. 입장료는 안내도 되었을것 같은데 꼭 사야 한다고 해서 30위안을 내고 표를 끊었다.

50미터 정도 걸어가자 광개토대왕비가 보였는데 유리벽안에 가로막혀 있어서 생각보다 웅장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표면에 이런 저런 글씨들이 박혀 있는것이 보였고 그 중에 몇 개는 일본이 우리나라의 남부를 지배했었다는 임나설이어서 크게 논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알고보면 큰 논쟁거리가 아닌게, 이 비석 자체가 고구려에서 자신의 왕의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만든것이므로 너무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즉 임나일본부 설이 나오게 된 근거는 ‘일본이 점령하고 있던 가야지역을 광개토대왕에 내려가서 몰아내어 주었다’는 한 문장 때문에 그런 것인데 이것은 너무 확대해석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이곳 중국에서 광개토대왕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은 ‘너무 확대해석해서 과민하게 반응하지 말라’라고 충고한다. 광개토대왕비에 적힌 글씨들은 광개토대왕이 자신의 업적을 칭송하기 위해 임의로 만든것이므로 사실에 기초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비석에 새긴 글자 한문장으로 일본이 한반도를 점령했었다고 보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중국에서 광개토대왕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의 의견들이다.

아무튼 광개토대왕비를 보고나서 그 위에 있는 고분묘를 보고나니 불과 3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더 오래 있고 싶어도 뭐 할게 없는 것이다.

바로 장군총으로 이동하자고 하니 장군총도 약 5분정도 택시를 타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장군총으로 들어가는 것도 30위안을 내야 한다고 해서 난 굳이 들어가 볼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에 그냥 밖에서 보고 사진만 찍기로 했다.

정말 패키지 관광객처럼 하고 말았다.

굳이 가봐야 인터넷에서 나와 있는 사진들과 똑 같을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택시를 타고 내려오니 중간에 석실고분묘가 있단다. 그것도 그냥 밖에서 보고 지나치고 말았다. 통화가는 버스가 4시정도에 있다고 해서 그 버스를 놓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저씨는 이곳에서 택시 가이드를 많이 해본듯 중요한 지점들을 설명해 준다.

석실고분을 지나쳐서 버스터미널로 오는 길에 국내성터를 보여주는데 그 유명한 국내성터가 도심에 돌벽처럼 방치되어 있어서 조금 염려가 되었다. 좀 더 관리를 해주면 관광지로서의 가치가 살아날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택시 아저씨와 헤어져서 버스터미널에서 표를 끊었다. 다행이 4시발 통화행 표를 살 수 있었다.

통화로 가는 길은 무지 험했다. 지금까지는 좋은 길들이었지만 통화로 가는 길은 꼬불꼬불한 산길이다.

2시간 반 정도 가서 6시 반에 통화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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