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2012.11.25 05:37

▶추천도서◀ [조선일보와 나] 이 실화를 통해 안티조선의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추천도서◀ [조선일보와 나] 이 실화를 통해 안티조선의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안티조선을 온라인에 처음 알렸던 최초의 논객 면도날! 조선일보와의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를 20년만에 공개합니다.

 

조선일보에 대해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담을 상세히 기술했네요.. 한번 보세요!

 

 

 

한 개인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조선일보와 나와의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한 개인이 큰 사건을 벌일 수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왜 자신의 힘과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되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더불어 남의 이야기에 큰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도 알았으면 한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때로는 큰 의미 없이 나열된 것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비난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때문에 비난 받는 사람이 나쁜 것이 아니다. 비난하는 사람이 나쁜 것이다.

처음 조선일보 폐간이란 말을 사용했을 때, 그로 인해 통신망, 인터넷상의 조선일보 안티운동이 나의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이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인터넷 상의 여론이 형성되어서 칼날을 겨누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면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한 개인의 힘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을 우리 평범한 서민들이 알게 된다면 소외된 삶에 다소나마 위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조선일보를 비난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통신 여론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한 책이다

지금은 조선일보를 조금 덜 미워하게 되었다. 누군가 말했던가? 젊어서 데모 한번 안했다면 가슴이 없는 사람이지만, 나이 들어서도 데모를 계속하는 사람은 바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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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개인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우리의 삶에 뛰어넘어야 할 아무런 한계가 없다면 
우리가 하는 경험들은 결실의 기쁨을 잃어버린다.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가는 고난이 없다면
산 정상에 서는 기쁨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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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켈러 -


조선일보를 싫어하게 된 일....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너무 강력한 권력을 누리던 조선일보에 대한 막연한 증오에서 출발했을 수도 있고 강준만 교수가 쓴 〈인물과 사상〉이란 책을 보고 조선일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가고 싶던 언론사에 입사를 못하게 된데서 오는 콤플렉스였을까. 아무튼 나는 조선일보를 싫어하게 되었다. 싫어하던 것이 증오로 바뀌는 것에는 큰 이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너는 권력자니까 이런 얘기 정도 들어도 큰 상관없겠지’ 라는 마음도 있었으리라. 
군사정권에 대한 젊은이들의 반항심도 이런 것 아니었을까. 당시 분위기 자체도 조선일보에 우호적이진 않았다. 
내가 하이텔 통신망을 이용하던 1990년 초에는 데모를 많이 하는 분위기였으며 전대협 등 대학생들이 대정부 투쟁을 많이 하였고 그게 용기와 정의로 인정받던 상황이었다. 
기득권 세력들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그리 큰 잘못이라 여겨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용기’라고 받아들여졌으므로 조선일보나 재벌, 대통령 등을 비난 하는 것은 젊은 학생으로선 타당한 선택이었다.(그렇다고 내가 학생운동에 심취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데모는 전혀 하지 않는 보수적인 학생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런 조선일보 비난 분위기에 영향 받았다. 만약 그냥 영향 받고 조용히 침묵했었다면 이 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선일보에 대한 미움을 혼자 생각하는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 생각을 통신망에 글로써 올리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특히 여론이 그 글의 내용과 동조될 때 그 글의 위력은 배가한다. 그 글이 여론의 파도를 타기라도 하게 되면 갖게 되는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 할 수 있다. 조선일보에 대해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인터넷상의 안티움직임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 안티여론은 불과 몇 명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중앙대 광고홍보학과에 다니던 나는 책을 읽는 것이 취미였다. 많이 읽었었는데 그때 강준만 교수가 쓴 글들은 나의 감각을 깨워 일으켰다. 그가 쓴 글의 주제는 안티조선, 반서울대, 호남선호 이 세 가지로 축약되는데 한마디로 진보스러웠다고 보면 된다. 
당시는 이런 진보적인 성향이 지식인의 의무 같은 경향도 있었으며 정부에 반대하는 지식인들이 워낙 많았기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강준만 교수는 특히 조선일보에 대한 맹비난을 실명으로 써서 독자들에게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그가 나보다 더 큰 영향력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가 현재의 안티조선을 만든데 일등공신인 것만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는 그가 그렇게 큰 반향을 나중에 불러일으킬 것을 알았을까? 아마 그도 나와 비슷한 입장이었을 것이다. 
작은 지방대 교수가 쓴 글 따위 누가 보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처음에는 글을 썼으리라. 그러나 워낙 과감하게 많은 글을 쓰다 보니 그 글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나오게 되고 그것에 여론화함으로써 눈덩이가 굴러가며 커지듯 강력한 흐름이 되고 만 것이다. 
강준만 교수도 나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힘이 생각보다 커질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한 사례인 것이다. 
그 혼자는 별 힘이 없는 사람이지만 꾸준히 집념을 갖고 글을 씀으로써 누군가 추종자들이 생기게 되고, 그로 인해서 그의 글이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강준만 교수가 대단한 사람이냐면 그건 아니다. 사람들은 누가 누구를 비난하는 목소리를 듣게 되면 그 대상에 대해 안좋은 감정을 가지게 된다. 
누가 ‘저 노래 안 좋아’ 하면 그 노래가 왠지 안좋게 들리게 되고 ‘저 사람 나쁜 사람이야’하면 왠지 나쁘게 보여 진다. 그만큼 다른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받는게 인간이란 존재이다.
강준만 교수는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제대로 자극하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강력한 비난을 실명으로 통렬하게 해댔다. 험담꾼인 것이다. 
그런 비난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면 누구라도 조금은 나쁜 영향을 받게 된다. 강준만 교수의 부정적인 글을 읽는 사람이 모두 그 의견에 동조하지는 않겠지만 몇 명은 동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후회한다.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은 안좋은 일이라는 것을.. 당시 강준만 교수의 글을 읽고 나는 내 분노의 화살을 조선일보로 돌리게 되었다. 조선일보를 타켓으로 삼은 또 한 가지 이유를 든다면 조선일보에 대한 질투심을 들 수 있다. 
가장 강력한 언론사로서 못할 것이 없는 조선일보는 언론지망생이던 내게는 가장 부러운 대상이었다. 강한 권력을 가졌으면서도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 조선일보가 미웠다. 
누군가 적개심을 갖게 되면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길거리에서 데모를 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노조를 만들어 행동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술에 취한 채 택시 운전사에게 정치인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도 한다. 
나는 통신망에서 글을 씀으로써 나의 분노를 표시하였다. 내가 쓴 글이 왜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쓴 글과 다른 결과를 냈는지는 나중에 설명하겠다. 당시 나는 통신망에서 ‘면도날’ 이라는 필명으로 증권정보에 관한 글을 꾸준히 쓰는 일명 죽돌이였다. 
그렇다고 해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정도는 아니었고 조금 영향력이 있는 정도였다. 그러나 쓰다 보니 점점 추종자가 붙게 되어서 점점 조회수를 늘려가게 되었다. 눈덩이는 굴러가면서 점점 커지게 된다. 굴리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멈추지만 않는다면 그 눈덩이는 예측할 수 없게 커질 수 있다. 나는 통신망을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의 조회수를 끌어내는 법을 연구하였으며 다른 통신망에까지 글을 쓰는 단계에 이르렀고 한때는 4대통신망에 모두 글을 올리고 한 글이 5,000조회수를 내는 경우도 생겨나게 되었다. 당시에는 4대통신망을 합쳐서 5,000조회수이면 상당한 숫자였다.

단순 조회 외에 다른 댓글이나 유사한 추종자를 합하게 되면 조회수 이상의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일관된 주제의 글을 쓸 경우 그 글은 내용의 정확성이나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통신망의 주목을 받게 된다. 
내가 선택한 주제는 ‘안티조선’이었으며 결국 그것을 출발점으로 통신망의 안티조선 여론은 형성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취미였고 재미였다. 통신망 글쓰기는 재미있었으며 다른 사람의 반응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글을 읽기만 하고 감탄만 하다가 어느 시점에선가 통신망에 조선일보에 대한 내 생각을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그렇게 많은 글을 쓸 능력이 있는지도 몰랐다. 쓰다 보니 알게 된 것인데, 나는 단문이나 제목을 눈에 확 띄고 주목받도록 쓰는데 강점이 있었으며 글을 많이 쓰는 재주가 있었다. 
계속해서 통신상에 조선일보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점점 맹목적으로 비난하게 되었다. 
나에게 영향 받는 추종자가 생기는데서 나오는 쾌감도 있었다. 내 글이 영향력을 갖는다는 것은 의외로 집념과 책임감을 갖게 한다. 책을 내는 작가의 심정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만약 PC통신망(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 유니텔)이 없었다면 조선일보는 이렇게 비난받지 않으며 과거의 영예를 누렸으리라.
추종자들이 생기게 되면서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더 강한 글, 더 강력한 내용을 찾아서 쓰게 된다. 그렇게 하면서 조선일보에 대한 나의 글은 점점 자극적이고 화끈해졌던 것이다. 
내가 통신망에서 인기를 얻게 된 것은 나의 대학교육과도 무관하지 않다. 글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본격적인 작가 수업을 받은 적은 없는 나였다. 
그러나 중앙대 광고홍보학과에 입학하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주목받는 글, 창의적인 글, 획기적인 글쓰기에 대해 잠재적으로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전문적으로 그런 통신상의 글쓰기를 배우지는 않았지만 늘 눈에 확 들어오는 글을 써야 한다는 내 잠재의식이 통신망에 적합한 창의적인 글쓰기를 가능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전문적으로 그런 것만 배운 내가 쓴 글은 아마도 다른 사람들보다는 조금 나았을 수도 있었다. 
조선일보에 대한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회사(삼성생명)에 다니면서 부터이다. 그 전에도 통신망에 글을 쓰곤 했으나 사소한 우스갯소리, 또는 각종 프로그램에 관련된 글이 전부였지 정치나 조선일보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좋은 시스템은 내가 취미삼아 하던 일에 집중할 시간을 제공해주었다. 바로 ‘안티조선’이었다. 

[
나의 마음] 통신여론 형성에 있어서는 질보다 양이 중요하다.

흔히 생각할 때 정확한 전망, 감동적인 글, 명문을 써야 통신여론에 있어 명성을 얻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좋은 글 하나보다는 어설픈 글 10개가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현재 통신상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논객들은 대부분 ‘다작’을 하였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쓴 글의 숫자와 빈도는 다른 사람들을 압도한다. 그래서 그들은 고수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절대 지식이나 판단력으로 고수가 된 게 아니다. 이런 현상은 통신뿐만 아니라 책, 영화 등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많은 글을 쓰다 보니 개중 좋은 작품이 나와서 베트스셀러 작가가 되는 경우는 흔하다. 단 한 작품으로 베트스트셀러가 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다. 임권택 감독의 경우도 무진장 작품을 찍다보니 명감독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출처 : 소셜토론 [소세지]

 http://www.sossage.net/sossages/conversation/1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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