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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사업부및미팅

★ 나의 비즈니스 여행기.......(4)대련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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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에 와서 놀란것은 기후이다.

대련의 날씨는 서울과 비교해서도 훨씬 온화하다. 위도상으로는 엄청 북쪽인데 날씨가 이렇게 따뜻하다는 것이 참 이상하다. 해안이라 그런가보다. 연길에 있을때는 벌써부터 추웠고 하얼빈은 50일 전인데도 엄청나게 추웠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여기는 11월 초순에도 전혀 춥지가 않은 것이다. 이러니 일본인들이 이곳을 좋아하는게 이해가 됐다.

대련은 일본인들이 많다. 과거 만주를 일본이 침공할 때 대련과 여순항을 그 기점으로 했었다. 그래서 많은 일본인들이 대련을 근거지로 살아가고 있다.

대련시내에는 유달리 일본음식점들이 많고 일본 풍 건물들이 많다. 심지어는 일본사람들을 전문으로 접대하는 술집이나 유흥업소들이 곳곳에 보일 정도이다.

대련에 있는 관광지로는 러시아 풍정한 거리와 3.8광장, 해안광장 등이 있고 조금 멀리 가려면 여순 등으로 가야 한다. 가장 큰 시장으로는 따샹이란 곳이 있는데 우리나라 말로 큰 가게 이다.

이곳 대련에서 어머니가 부탁한 선물을 사야 했다. 어머니는 한국에 올때 무소뿔로 만든 빗과 녹두, 흑미 등을 사달라고 했었다. 중국에서는 싸다고 꼭 사달란다. 대련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쉬고 다음날인

4일 우선 비행기를 끊으러 나갔다. 비행기는 넉넉하게 좌석이 있어서 당일날 가도 그리 어려움없이 표를 살 수 있었다. 5일 아침 8시20분에 서울가는 왕복행을 2450위안에 살수 있었다. 연길에 비하면 3분의 1가격이다.

그 표를 산 후 일단 시장을 돌아보며 어머니의 소원을 해결해줘야 했다.

대련에서 가장 크다는 대상을 갔는데 거기는 작은 소매시장이 아니라 도매상을 위한 전문판매점의 느낌이었다.

그래서 녹두나 콩 등을 사기에는 적당하지 않았고 아무리 둘러봐도 살 수 없었다.

아무래도 택시운전사에게 속은 느낌이다. 이 사람이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전화를 하고는 찾아준 시장인데 아무래도 나를 속인느낌이다.

이 시장에서는 물건을 사지 못하고 그냥 꿀 한통만 사갔다. 빈속으로 다니는 경우가 많아서 빈속일때 꿀을 먹으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는 일단 포기한 상태로 시내로 들어와서 거리구경을 하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시내를 조금 돌아보니 대련에 있는 특이한 전차가 보인다.

궤도차인데 대련 중심지를 관통하는 기차로 생각보다 재미있고 거리구경하는 맛이 났다.

너무 짧은 것이 흠인데 종점에서 종점까지 가다보면 대련시내에 대한 느낌이 다가온다.

중간쯤에서 내려 적당한 시장을 찾아서 걸어갔다. 가다보니 꽤 번화한 곳이 나오는데 이곳의 일본식당에서 라면을 먹자 왠지 기운이 생기고 좋은 느낌이 들었다.

그 번화가를 걷고 있는데 내 눈앞에 무소뿔을 파는 노점상이 보였다. 물어보니 첨엔 50위안을 부르다가 내가 기겁을 하고 돌아서자 나를 붙잡고는 20위안으로 깍아준다. 나는 가격을 조절하다 3개를 40위안에 사기로 했다. 그런데 그 빗을 사고나자 바로 근처에 고급 무소뿔 파는 가게가 보인다.

이 가게의 빗은 한 눈에 봐도 고급이라는 느낌이다. 선물은 모름지기 고급을 사야한다는 신념이 있던 나로서는 조금 안타까웠지만 일단 가격을 보기로했다.

여기서는 흑단으로 만든 빗이 100위안에서 1000위안까지 한다. 나는 제일 비싼 1000위안짜지를 갖고 가격흥정을 시작했다. 그 가게에서는 절대 가격을 깍아 줄 수 없단다.

무슨소리인가 지금껏 중국에서 물건을 수없이 사면서 대부분은 가격을 깍았는데 전혀 깍아줄 수 없다니..

500위안으로 절반가격을 불렀으나 그들은 절대 안된다고 웃으면서 거절한다. 내가 돌아서면 다시 잡겠지 하고 돌아서서 나오는데 그들은 잡지 않는다.

그냥 돌아서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저 빗을 꼭 사기는 사야겠는데...

나는 다른 가게가 있나 조금 돌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1시간을 걸어도 그 가게는 보이지 않는다.

깍아주지 않는 것에 조금 화가 나서 나는 그냥 빗을 안사고 가려고 했는데 이때 조금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목이 말라서 그 앞 가게에서 생수를 사는데 2원이란다. 내게 잔돈은 1원짜리 한 장과 10전짜리 동전들뿐이었다. 나머지는 100위안짜리라 잔돈을 거스르기가 귀찮은 상황이었다. 난 별 기대없이 그 청년에게 1위안과 나머지 동전들 50전에 생수를 하나 달라고 하니 그 청년은 웃으며 그렇게 하라고 한다.

난 그가 꽤 고마웠다. 그리고 생수를 마시고 걸어가는데 거리에서 생기찬 음악이 들린다.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며 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청년으로 인해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봉사는 큰 것이 아니다. 남을 기쁘게 해주면 그것이 봉사인 것이다. 내가 물건을 사준다면 그 가게 아저씨도 좋아하겠지..’

나는 다시 한번 그 가게로 가보았다.

아까 있던 부부 중에서 아주머니는 어디가고 아저씨만 남아 있다. 그 아저씨는 내가 비싸다고 하자 진지한 얼굴로 ‘헌 하오’라고 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제품을 선전하던 사람이다.

난 ‘타절 이씨에 마’라고 하며 조금 깍아 달라고 했다.

그 아저씨는 흠칫 거리더니 진지한 얼굴로 750위안이라고 한다.

난 700위안으로 깍아서 그 빗을 샀다. 내가 더 비싸게 산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로 인해서 이 부부가 기뻐할 수 있다면 그것도 또한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좋게 물건을 산 하루였다.

목표하던 빗을 사자 이제는 녹두와 흑미만 사면 되었다.

이것들은 도저히 어디서 사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녹두라는 말을 중국사람들은 모르는 듯 했다. 내가 녹두라고 해도 그들은 알아듣지 못했고 나 또한 ‘녹두’의 중국발음을 정확히 얘기하지 못했다. 그냥 물건 파는 시장, 농산품 파는 시장이 어디냐고 물어보다 저 건물 지하로 내려가라기에 내려가니 큰 농수산슈퍼 같은 곳이 나온다.

거기에 내가 찾던 고급 녹두와 홍두, 흑미, 깨 등이 있었다. 나는 종류별로 다양하게 어머니가 요구하는 품목들을 샀다.

다 사고 나니 내 캐리어는 너무 무거워져서 들기조차 힘들 지경이었다. 아마도 35키로는 되는 듯했다.

비행기 탈 때 추가요금을 내지는 않았지만 10키로 정도가 규정에서 초과했다고 얘기했었다.

나는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는 뿌듯함에 기분이 좋아져서 시내를 걷다가 버스를 타고 이곳저곳을 갔다. 대련항까지도 가보았는데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배를 타고 가는 것도 좋은 기억이 될 듯하다.

오늘밤은 어제 안 가 본 량타오샤 안머우를 가보기로 했는데 이곳은 대련에서 가장 좋다는 사우나중의 하나이다.

가보니 역시나 시설이 훌룡하고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나는 푹 쉬면서 이곳의 시설을 구경했는데 몇 개 층에 걸쳐 있어서 무슨 시설이 있는지 다 알지 못할 정도였다.

다음날 아침 8시 2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 나는 아침 6시에 나와야 했다. 비행장까지는 20분 정도가 걸려서 도착했고 나는 편하게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서울에 도착하자 서울의 공기가 신선하게 느껴졌다.

중국에서 오래있다 보니 서울공기가 다 좋게 느껴지다니...

과거에는 서울에서 어떤 사람이 조선족인지 전혀 구별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조금만 보면 누가 조선족인지 구별할 수 있다. 비행기를 타고 내려서도 바로 구별할 수 있었고 지하철에서도 내 눈에는 조금 구별이 된다. 우리나라에는 생각보다 많은 중국교포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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